김해 묘법연화사 법지 합장

법구경에 '擊人得擊 行怨得怨 罵人得罵 施怒得怒 (격인득격 행원득원 매인득매 시노득노)'란 사구게가 소개됩니다.  그 뜻은 "남을 때리면 남도 나를 때리고, 남을 원망하면 남도 나를 원망하고, 남을 욕하면 남도 나를 욕하고, 남에게 성내면 남도 나에게 성을 낸다"는 뜻입니다. 세상은 거울과도 같으며, 거울 속에 상은 내가 하는 대로 따라 한다는 진리를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명한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는 항상 편안한 마음으로 세상 사람들을 자비와 사랑으로 대하며 성내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비와 사랑은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서도 최고의 덕목입니다.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은 사람을 곤충으로 비유하여 이 세상에는 3 가지 형 즉, 거미형과 개미형 그리고 꿀벌형의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먼저 거미형 인간은 거미줄을 쳐놓고 벌레를 잡아먹듯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이기적인 인간입니다. 개미형 인간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나, 삶의 목표가 오직 자신과 자신의 가족만을 위해서만 부지런히 일하기 때문에 단결심이 강한 개인주의형 인간으로 살아갑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될 것입니다. 꿀벌형 인간은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이웃들에게까지 화수분을 옮겨 도움을 주고 꿀을 나눠주는 등, 이타적으로 살아가는 유형의 인간형을 말합니다. 이러한 꿀벌형 인간은 상대방을 계산적이고 실리적으로 대하지 않는다면, 많은 사람들과 폭넓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게 되며 강한 친화력을 가진 사람으로 평가 받을 것입니다. 부처님의 자비와 사랑의 끝이 이러한 삶입니다.

 중생에게 있어서 악과 선의 구분은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본성조차도 본래 착하다거나, 본디 악하다는 구분은 없습니다. 거미 유형의 인간이라 하더라도 '참나'를 찾으면 꿀벌형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 현풍 곽씨 집안의 한 사람이 장가를 들었는데, 그 부인의 행실이 단정치 못했습니다. 그가 아무리 부인을 타이르고 별수단을 다 써 보았으나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책을 읽다가 '孟子道性善 言必稱堯舜(맹자도성선 언필칭요순), 사람의 본성은 본래 악한 것 없이 착하다. 누구든지 그 본성은 착하여 모두가 요순과 똑같다'는 구절을 읽고 깊이 깨달은 바가 있어 '우리 마누라의 본성에서 요순을 봐야 겠다'라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는 아침마다 "사람이란 본시 모두 착한 것이오. 앞으로는 당신의 착한 성품만 보고 존경을 하렵니다"며 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습이 어색해 부인이 제발 절은 그만 하라고 만류를 했지만 남편은 "당신이 요순임금과 똑같소. 그런 당신을 보고 내가 어찌 절을 안 할 수 있겠소?"라며 몇 달을 두고 절을 계속하자 급기야는 부인도 맞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날 보고 요순이라고 하는데 진짜 요순은 바로 당신입니다"라며 서로가 요순이라고 호칭을 바꾸고 존경하면서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본디 사람의 성품은 청정하지만 망념이 '참나'를 덮고 있습니다. 이 망념을 걷어내면 본래의 청정함이 돌아오며 거미형 인간도 꿀벌형 인간으로 성숙해 질 수 있습니다. 원래의 '참나'는 태어나 자라며 경쟁 속에서 모진 풍상을 겪기 전까지는 청정했습니다. 망념이 덮이기 전 청정했던 '참나'는 어떤 모양도 어떤 굴레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악한 사람도 선한 사람으로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망념을 걷어내고 '참나'를 찾고자 노력하는 것이 유일한 길입니다.

김해 묘법연화사 법지 합장

저작권자 © 김해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