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희 김해시의회 도시건설위원장

김명희 김해시의회 도시건설위원장

오랜만에 제주도에 갔다. 묘한 해방감 같은 흥취가 일어났다. 자동차로 달리는 길가에 코스모스, 억새풀, 삼나무들이 모여서 바람에 흩날리고, 바람을 타고 코끝에 스치는 말들의 분뇨 냄새에 이어 말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는 모습이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마치 동양화가 공간을 더 많이 배치하듯 익숙한 동양화를 보는 듯 여백이 더 많은 보이는 제주의 풍경이 눈에 꽉 찬다. 제주의 매력이라는 생각도 든다. 같은 비바람도 여기 제주도와 육지의 비바람이 사뭇 다른 것 같다. 본디 바람 많은 곳이라 생각되어서 인지 그 바람 조차 사랑스럽다. 영화 속 여주인공들이 하얀 스카프를 휘날리며 드라이브를 즐겼던 것 같은 그런 딴 세계를 걷고 있는 감흥에 빠졌다가 문득 이상하게도 오랫동안 살았던 것 같은 묘한 정감이 일어나기도 했다.
 
 은자언니는 여전했다. 그 동안 동네에서 일어난 작은 사건까지도 끊임없이 나에게 고해바친다. 자랑거리, 서운했던 일, 화나는 일, 등등을 얘기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다. 나의 작은 격려와 위로만으로도 언니는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고마워한다. 전형적인 제주도 여자, 은자언니, 억척스러우면서도 단순하다. 마음 씀씀이가 너무 따뜻하고, 사려 깊은 언니가 좋다. 텃세가 심한 마을에서 은자언니 덕분에 사람들이 친하게 지내곤 한다. 조금은 이해타산을 따지면서 사는 모습조차도 참 정답다.

 언니 마을에서는 어려운 일들은 마을 공동체에서 모두 해결하고 있었다. 마을 부녀회에서 한 달에 한번씩 모여, 농약 팩이나 농자재들을 청소하고, 폐품을 모아 팔아서 공동기금을 만들기도 한다. 결석하면 벌금이 6만 원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여자들이 주도적으로 일 처리를 하고 있었다.

 언니는 집을 새로 짓고 있었다. 아직 완성되지 않아서 매트만 깔고 그 위에 감물 염색 패드와 이불을 덮고 칠흙 같은 어둠 속에서 명상을 하다가 눈을 떴다. 미완성인 집은 유리와 문으로만 되어 있어서 밖이 훤히 내다보였다. 너무 놀랐다. 감탄했다. 하늘에서 알알이 박혀있는  초롱초롱한 별들을 온 몸으로 안았다. 어쩜 이렇게 영롱하고 선명할까 어렸을 때 고향에서 보던 그 별들 이었다. 오랜만에 가슴의 풍요를 느끼며 마음이 꽉 차 오르는 것 같았다. 그날 밤의 감격은 오랫동안 작은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다. 다음 날 화창한 날씨 덕분에 오름을 오를 수 있었다. 제주도의 아름다움을 여기서 다시 한번 더 느낀다. 까만 흙에 까만 돌, 규격화 되어 있지 않은 밭들은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그저 걷기만 해도 기분이 흔쾌해 진다.
 
 다음 날 아쉬운 귀가 여정에 이륙하는 비행기의 창가로 제주도를 내려다 보았다. 여러 생각들이 봄날의 싹들처럼 우우죽순 막 올라온다.
 
 은자언니의 마을 공동체가 생각이 났다. 제주도에서의 마을 공동체에서 하는 여러 장점을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도시재생 뉴딜 사업을 접목시켜서 한다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났다. 끈적끈적한 공동체 의식, 그 동안 개발과 성장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인격쯤은 개의치 않는 지난 시절을 생각해 본다. 사람이 소중하고 개개인의 인권이 존중되는 ‘따뜻한 사람 중심의 세상’을 생각했던 기억이 떠 올랐다.
 
 그리고 정리되지 않았던 의문도 떠 올랐다. 왜 낮선 제주도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것 같은 정감을 느꼈을까? 아마도 나의 유전자에 태초부터의 기억들이 각인되어 있어서 본능적으로 이런 정감이 밀려오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본성은 태초에 대한 그리움이 분명 있으리라. 그 태초의 그리움은 어떤 구원의 원형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 우리 김해를 생각했다. 우리 김해 역시 역사의 도시요, 아직 자연의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는 도시다. 그리고 대도시 사람과는 다른 곱고 순박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김해시를 생각하면서 제주도의 멋스러움처럼 우리 김해시의 색깔과 멋스러움 그리고 ‘김해 다움’이란 것이 무엇일까 생각을 해 보았다. 어느 순간 비행기가 구름 위를 비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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