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칠산 묘법연화사 법지 합장

 

김해 칠산 묘법연화사 법지 합장

부처님의 제자 가섭과 아난은 매일 아침 탁발(걸식)을 하러 길을 나섰습니다. 가섭은 가난한 집을 주로 택했으나 아난은 항상 마을의 중심부인 상가 쪽으로 향하였습니다. 아난은 가섭이 굳이 가난한 집만을 고집하는데 의문을 품고, "가섭존자님, 왜 가난한 집만을 찾아가서 그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입니까?" 그러자 가섭은 "아난존자님, 사람들이 가난한 이유는 과거에 남을 위하여 베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미래에는 행복해지라고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라고 대답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아난에게, "아난존자님은 왜 부잣집만 찾아가서 탁발을 합니까? 그러면 다른 사람들에게 가난한 사람을 멀리하고 부자만 가까이한다는 오해를 받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아난은 "가섭존자님,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보다 탐욕의 늪에 빠지기가 더 쉽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나누어 베푸는 즐거움을 알도록 부자들만을 찾아 탁발을 하고 있습니다." 서로의 주장이 다른 가섭과 아난은 부처님이 내릴 결론이 궁금했습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부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부처의 마음이란 큰 자비심이니라. 이는 또한 차별을 두지 않은 사랑으로써 모든 이웃을 구제하려는 마음이니라."
  
 <숫타니파타>에 소개된 "걸식하는 이유는 밥을 빌려 육신을 유지하고 안으로는 법을 구하는 것이다. 첫째 많은 중생에게 복과 이익을 주기 위함이고 둘째 아만심을 극복하기 위함이고, 셋째 몸에 괴로움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함이고 넷째 탐욕과 집착을 제거하기 위함이다."라는 대목은 빌어먹는 탁발의 행위에도 오히려 큰 공덕의 의미가 숨어있다는 것입니다.
  
 <잡비유경>에 소개되는 보시의 공덕입니다. 어느 날 한 여인이 탁발을 나선 부처님 바리떼에 경건한 마음으로 밥을 담고는 절을 올렸습니다. 부처님은 탁발에 대한 법공양으로 "하나를 심으면 열이 나고, 열을 심으면 백이 생기며, 그리하여 마침내 도를 깨우치게 되느니라."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말이 지나치십니다. 한 그릇의 밥을 보시했을 뿐인데 어찌 그런 복을 받겠습니까?"라고 항의하자, 부처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너는 성 안에 있는 큰 나무를 보았겠구나." "보았습니다." "나무의 열매가 얼마나 열리더냐?" "해마다 수만 섬의 열매가 맺힙니다." "그럼 수만 섬의 열매를 따기 위하여 씨앗을 한 되쯤 심었겠구나?" "아닙니다. 단 하나의 씨앗을 심었을 뿐입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그 나무도 겨자씨만한 씨 하나를 심었는데 수만 섬의 열매가 맺지 않더냐? 땅은 비록 생각할 줄 모르지만 그 갚음이 그러하거늘 하물며 이 여인이 기뻐하며 한 그릇의 밥을 내게 보시 했는데, 그 복이 과연 어떠할 것 같으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백중재에도 어김없이 신도들의 꽃 공양으로 우리 절 대웅전의 법단이 아름답게 장엄되었습니다. 불상 앞에 자리한 그 꽃들은 시절인연이 닿아 부처님께 예경도 하고 우리 불자들의 마음에 희열과 기쁨을 주었습니다. 우리와 그 꽃들이 맺은 시절인연은 그 꽃들이 전생에 닦은 선업에 대한 선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미물이라고 여기는 꽃들도 백중을 맞아 각자 나름대로의 보시공덕을 쌓은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자 그 꽃들은 시들해졌습니다. 그러자 시든 꽃을 정리하지 않는다는 바지런한(?) 신도 분들의 불평이 일었습니다. 그러나 그 꽃이 결코 시든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와의 시절 인연이 다한 것뿐입니다. 꽃들이 부처님과 우리에게 베풀어 쌓은 보시공덕으로 더 좋은 시절인연을 찾아 떠나려는 것입니다.

 꽃은 비록 미물일지라도 그 공덕만은 수 만 섬으로 창대해질 것이며, 시절인연으로 만나 보시한 공덕도 분명 그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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