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칠산 묘법연화사 법지 합장

김해 칠산 묘법연화사 법지 합장

 흔들림이 없는 삶에 대하여 성경은 베드로 사도의 입을 빌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베드로후서 1:1-11)."  나를 택하신 하나님이 나를 향하여 품으신 그 뜻을 내가 분명히 안다면, 나는 후회 없이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는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불교에서는 이를 콕 짚어 명확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제법실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청정도론 제3권 17장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치 맹인이 땅 위를 걸을 때 길이건 길이 아니건, 불쑥 솟아올랐건 움푹 패었건, 평평하건 평평하지 않건 닥치는 대로 그곳을 걷는 것처럼 공덕이 되는 행위도 짓고, 공덕이 되지 않는 행위도 짓고, 흔들림 없는 행위도 짓는다."

 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장님인 사람의 비유를 든 중생의 이야기입니다. 나면서부터 장님인 사람이 길을 인도해 줄 사람이 없어 어떤 때에는 바른길을 가고, 어떤 때는 길이 아닌 곳으로 가기도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중생들도 인도해줄 사람이 없으면 육도윤회를 벗어나지 못하고, 어떤 때에는 공덕을 짓고 어떤 때에는 공덕 아닌 행위를 짓곤 합니다. 이 비유대로라면 우리는 눈을 뜬 장님인 것입니다. 열심히 살아가지만 하고 있는 일을 도대체 왜 하는지, 그 결과가 과연 무엇인지를 전혀 모르기 때문입니다. 눈 뜬 장님처럼 열심히 좌충우돌하면서 막살아 갑니다. 그런데 드러난 결과는 자신과 전혀 의도치 않은 모습으로 나타날 뿐입니다.

 그래서 좌측으로 가보았다가 또 우측으로도 가봅니다. 미래가 불안하다며 절대적인 신에게 기대어 보지만, 그건 지금의 어리석음을 해결해 주는 것이 못됩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우리를 눈 뜬 장님으로 만든 이유가 외부에 설정한 내 기준이 잘못되었고, 바라보는 내 눈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좌충우돌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잘못된 기준을 고치려고 하질 않고 흔들리는 기준에 세상을 맞추려고만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바로 눈 뜬 장님으로 만들어, 어떤 때에는 바른길로 가기도 하지만 어떤 때에는 길이 아닌 길로 갑니다. 모든 전제가 잘못되면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이 진리와 어긋나게 되고, 그로 인해  행동의 방식이 원리를 벗어나게 됩니다. 그리고는 생각의 틀이 근본적으로 잘못 설정되어 버립니다. 눈 뜬 장님에서 깨어나는 방법은 법에 따라 진리를 찾아 나서면 깨달을 수 있습니다. 법을 알고서 진리를 관찰하면 무명은 가라앉고 신령스러운 지혜는 드러납니다.

 부처님께서는 “눈 있는 자는 보라, 귀 있는 자들은 들어라. 낡은 믿음을 버리고 바른 믿음을 일으켜라. 낡은 믿음을 버리라는 것은 지금까지 갇혀있는 내 생각의 틀을 버리라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생각의 틀을 버리지 못하면 우리는 눈을 뜬 장님일 수밖에 없습니다. 바른 생각의 틀은 바로 연기적인 생각의 틀입니다. 모든 것은 정해지거나 미리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조건과 조건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바라보는 관점이 바로 연기적인 생각의 틀입니다.  이러한 연기적인 사고와 틀로서 나 자신을 바라보고, 눈앞에 다가오는 이 세상의 현실을 직시하게 되면, 보이는 모든 것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있는 것이 그대로 드러나면 거기에 가장 최선의 방편과 대응이 나타납니다.


 그것들은 결코 나를 해롭게 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전혀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처럼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우리는 신령스런 지혜, 즉 영지라고 말합니다. 늘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고요한 마음입니다. 눈뜬장님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실지견의 삶이 바로 공덕의 삶이며, 보람찬 삶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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