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칠산 묘법연화사 법지 합장

김해 칠산 묘법연화사 법지 합장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우리의 놀이문화에는 화투가 단연 손꼽힙니다. 산이나 들, 어느 장소든 몇 사람만 모이면 고스톱 판이 자연스레 벌어집니다. 화투의 구성은 48장으로 4장씩 12달을 상징합니다. 꽃과 풍광을 중심으로 12달로 나누어 광 또는 10끗짜리 그리고 5끗짜리와 껍데기로 이뤄집니다. 화투는 여러 가지 놀이 방법이 있지만 예전에는 주로 월별로 그림을 맞추는 민화투가 대세였습니다. 민화투는 패를 나누고 시작하여 더 이상 패가 남지 않으면 각자 획득한 끗수를 계산하여 많이 딴 쪽이 이기는 것입니다. 이 때 광은 1장 당 20점, 10끗은 10점, 띠는 5점으로 하여 자신이 먹은 화투의 장 수 만큼 곱하여 합산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피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점수가 없습니다. 철저하게 계급사회의 문화에 따라 제정된 규칙입니다.

 이처럼 화투에 나타난 놀이 방식은 당시 시대적 배경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먼저 광 다섯 장은 지배귀족을 의미 합니다. 거기에 위엄을 나타내려고 아예 광이란 커다란 글씨를 박아둡니다. 그리고 10끗짜리는 상류층으로 분류됩니다. 이러한 상류층 중에도 권력층이 존재하는데 난초·풍·비 등으로 이들 가족 네 명이 모두 모이면 '약'이라고 정해서 20끗씩을 더 받게 됩니다. 혈연관계의 기득권을 나타냅니다. 또한 사회의 일익을 담당하는 전사로서 5끗이 있는데 이들 중 금수저로서 홍단, 은수저로서 청단, 거기에 흑싸리 출신의 흙수저로서 초단이 대접을 받아 3가지 단의 띠를 차지하면 30끗씩을 더 받게 됩니다.

 민화투는 철저한 신분의 구별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며 이 게임은 중간에 멈출 수도 없고 정해진 팔자는 바꿀 수 없이 끝까지 진행됩니다. 결국 파장이 되어 정해진 계급의 값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더 더욱 잔인한 것은 아무리 많은 피를 모았다고 하더라도 전혀 대접도 받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피는 서민층을 대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화투도 정치상황이나 사회적 이슈를 반영해 놀이 방법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광의 끗발이 없어집니다. 광도 그저 하나당 1점일 뿐입니다. 그래도 광의 위력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5장이 모두 모이면 엄청난 파괴력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민화투처럼 끝까지 가야 상황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요건만 충족되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또한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10끗짜리 상류층의 위력은 없어집니다. 다만 혈연관계의 힘은 더욱 커졌습니다. 고도리 5점이 그것입니다. 물론 전사들의 노력은 그대로 인정해서 홍단과 청단과 초단의 위력은 존재합니다. 다만 민화투와 다른 점은 그들도 뭉치면 사회의 판을 갈아엎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 더욱 놀라운 점은 피들의 반란입니다. 민화투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피들이 강력한 힘을 갖게 되며 이 또한 뭉치면 '스톱'을 외치며 판을 갈아치운다는 것입니다.

 사회의 변화를 요구하는 힘은 메시아의 출현도 만들어 냅니다. 보너스 패는 로또와 다름없는 메시아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설사도 하고 싹쓸이도 경험하고, 보너스 피로 횡재도 합니다. 기쁨에 젖어 날뛰다가 뻑으로 패가망신합니다. 포기하고 던진 방편이 쪽으로 부풀려져 환급을 받기도 합니다. 인간만사 새옹지마를 경험합니다. 한 가족 힘이 뭉쳐져 세장을 흔들면 대박을 터트립니다. 이런 화투의 규칙은 누가 가르치거나 주장하지 않았음에도 거부감 없이 수용이 됩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던 평등에 대한 요구가 놀이로 승화되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바라문교의 전설에 근거한 인도사회의 고질병인 계급제도를 타파하고자 하였습니다. <마누법전>에 따르면 사제계급인 브라만은 범신(梵神)의 입에서 태어났고, 귀족계급인 크샤트리아는 옆구리에서 태어났으며, 평민계급인 바이샤는 허벅지로, 노예계급인 수드라는 발가락에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이런 터무니없는 계급제도의 주장은 인간에게 씌워진 '신의 굴레'입니다. 부처님은 이러한 모순된 사회제도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모든 사람은 종성(種姓)에 의해 귀천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행위에 의해 결정된다'는 혁명과도 같은 선언을 했습니다. 이는 법화경 약초유품에서 강조한 부처님의 고스톱과 같은 평등사상입니다. 부처님이 세상을 갈아엎고 싶었던 이유는 모두의 평등을 위해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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