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용 가야스토리텔링협회장

  <제6회>

 ㅁ 감국의 전설

 그는 늘 꿈꾸어 온 대로 산기슭에다 화실을 짓고 싶었는데 드디어 그 꿈을 이루게 되었다. 화실의 이름을 생각했는데 잘 떠오르지 않아 미루어 오다 가까이 지나는 학문이 깊은 문인에게 이름을 부탁했다. 문인은 '구무화방'이란 멋진 이름을 지어주었다. 구무화방이란 가야의 건국신화에 나오는 '거북이가 춤을 추는 그림방'이란 풀이도 해주었다. 화가는 그 이름이 매우 흡족하게 여겨졌다.
 
 이름을 짓고 난 다음날, 아랫마을에 사는 '화영'이란 이름의 예쁜 소녀가 우연히 구무화방에 들러 화가의 작품을 구경하고, 서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날부터 소영 화영은 자주 놀러 오게 되었다. 소녀와 화가는 점점 가까워지고 어느덧 서로 연정이 움트기 시작했다.
 
 화가에게는 창작열이 솟았고 신령한 거북의 도움인지 그림 한 폭 한 폭이 이상한 마력을 지니는 듯했다. 그 그림을 보면 세상사에 상처받거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 괴로운 고통 속에 있는 마음들이 크나큰 위로와 감동을 받는 것이었다.
 
 그림의 가치와 명성이 차츰차츰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보기를 원했다. 그러나 화가는 불타는 예술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절제하여 다작을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그림은 더 큰 가치로 평가되어 갔다.

 문인은 말하기를, 이는 수로왕께서 가야를 세우실 때 하늘과 신령한 구지가의 합창이 도왔듯이, 신령스런 거북의 춤이 영기가 되어 그림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즈음 가짜 작품이 슬금슬금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진짜 작품에서와 같은 감동은 도무지 얻을 수 없었다.
 
 소녀와 화가는 만나면 뜨거운 포옹과 사랑을 했고, 두 사람 사이는 날이 갈수록 더욱더 깊어만 갔다. 한편 소녀의 집에서는 이들 사이를 눈치채고 부모와 가족들은 노발대발했다. 화영의 약혼자도 간절히 애원하였지만 허사였다. 결국 소녀의 부모는 화영을 데리고 멀리 가야의 변방으로 이사를 가서 살게 되었고, 소녀는 더 이상 화가를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소녀는 그때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화가 또한 붓을 들지 못하고 허탈감에 빠져들었다. 소녀는 중병이 들었고 가족들은 의원을 찾아다니며 백방으로 치료받게 하였으나 전혀 효과가 없었다. 소녀는 결국 죽고 말았는데 죽음 직전에 유언을 남겼다. 화장하여 자신의 뼛가루를 불무산 구무화방 부근의 계곡에다 뿌려달라는 것이었다. 슬픔에 젖은 가족들은 그녀의 유언대로 해주었다.
 
 한편 화가는 소녀만 그리워하며 전혀 붓을 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소녀는 환한 얼굴로 나타났다.
 
 "웅암 화백님, 저는 화백님 곁에서 작은 국화로 남고 싶어요. 맑고 고운 향기를 드릴게요. 선생님 사랑해요."

 귓전에서 속삭이듯이 얘기하는 것이었다. 화가는 놀라서 잠을 깨었다. 꿈이었다. 그날 이후 화가는 소녀를 더욱 그리워하며 눈물지었다. 그런데 그해 가을 구무화방 부근 계곡에 작고 노오란 감국화가 흐드러지게 많이 피어났다. 온 계곡에 향기가 진동했다. 화가는 화영 소녀의 환생임을 즉각 짐작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 향기를 맡으면 맡을수록 영감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불같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화가는 다시 붓을 들고 혼신의 열정을 바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 활동은 가야 연맹국뿐만 아니라 신라, 고구려, 백제는 물론이고 중국과 왜국에까지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 당시 효성이 지극했던 질지왕은, 시조 할아버지의 비인 허황옥 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왕후가 처음 시조와 결혼했던 곳에 절을 세워 왕후사라 하고 밭 10결을 바쳐 비용에 충당토록 하였다.

 질지왕은 또 왕후사를 더 좋은 절로 만들기 위해, 신화를 시켜서 웅암 화가에서 벽화를 그려줄 것을 부탁하였다.
 
 웅암 화가는 어명을 받들어 심혈을 기울여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수개월이 지난 후, 질지왕은 친히 방원 왕후와 왕자 겸지를 대동하고 왕후사 현장까지 방문하여 웅암 화가를 격려해 주었다.
 
 겨울에 시작한 그림이 봄이 가고 여름이 갈 때까지, 화가는 줄곧 매달려 혼신의 힘을 다했다. 여름이 다 갈 무렵, 작품의 완성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화가는 점점 기운을 잃고 기진맥진해졌다.
 
 화가는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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