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칠산 묘법연화사 법지 합장

김해 칠산 묘법연화사 법지 합장

 불교를 두고 논의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전도 선언'입니다. 이는 부처님이 처음 법을 펼치기 시작한 이후 얼마 가지 않아 승단에 60명의 제자가 형성되었을 때 선포한 것입니다.  <쌍윳따 니까야(상응부)>에 언급된 '전도 선언'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존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하여,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겨 신들과 인간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길을 떠나라. 둘이서 한길로 가지 마라.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 뜻과 문장이 훌륭한 법을 설하라. 오로지 깨끗하고 청정한 삶을 드러내라. 눈에 티끌 없이 태어난 사람도 있지만 그들은 가르침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버려지고 있다. 그들은 가르침을 들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나도 또한 가르침을 펴기 위해서 우루벨라의 세나니가마로 갈 것이다."

 이러한 전도 선언의 모든 대목들은 제 각기 큰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특히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 뜻과 문장이 훌륭한 법을 설하라. 오로지 깨끗하고 청정한 삶을 드러내라."는 부처님의 '설법의 이상적인 양상이 제시된 대목'임을 드러내는 이 부분이 대단히 중요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이것을 후세의 불교인들은 간략히 '초중종(初中終)의 선(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또 '조리와 표현을 갖추어서 법을 설하라.'고 되어 있기에, 이를 '의문구족(義文具足)'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밖에도 '원만 무결하고 청정한 수행'을 설하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부분 특히 예수가 열 두 제자를 보내며 말했다는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웠다 하고, 병든 이를 고치며, 죽은 이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라.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마라. 그때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다.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의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는 대목과 크게 비교됩니다.

 "성령에 충만해 권위 있는 말을 하라"는 예수와 달리 부처님은 처음과 중간과 결말을 일관하여 잘 설할 것을 제자들에게 요구했습니다. 청중의 감정을 뒤 흔들며 가르침을 펴는 것보다 고요한 어조로 담담하게 대중들에게 설명해 주라고 요구했습니다.

 "이론과 내용을 가지고, 이성을 향해 호소하라"고 제자들에게 강조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부분은 부처님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처음은 좋은데 끝이 안 좋은 것보다 처음은 좀 나빠도 끝이 안 좋은 것이 더 낫습니다. 이는 합리성과 객관성을 갖추고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과도 일맥상통합니다. 그리고 "오로지 깨끗하고 청정한 삶을 드러내라."라는 이 대목은 '원만 무결하고 청정한 범행(梵行)을 설하라'라는 주문입니다. 그래서 이 대목은 전법자가 청정한 범행을 몸소 실천하라는 의미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입으로는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 조리와 표현을 갖춘 법을 설했다고 할지라도 몸소 실천하지 않으면 감화를 시킬 수가 없습니다. 모름지기 전법자는 청정한 범행을 드러내어 모든 사람들을 감화시켜야만 합니다. 깨달음을 얻은 후 부처님은 열반에 드실 때까지 청정심을 한 번도 무너트리지 않았습니다. 초심이 종심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을 일컬어 '행위의 설법자'라고 부릅니다. 삶 전체가 설법 그 자체였습니다.

 그의 생각과 말, 행동이 한 번도 진리의 자리를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인생의 고해를 내가 편안케 하리라"는 약속을 실천했습니다. 부처님은 평생 진리의 화신이 되어 인연의 법을 설파하며, 계를 어기고 죄를 짓느니 차라리 타오르는 불길을 껴안는 게 나으며, 불길이 이글거리는 쇳덩이를 먹는 것이 낫다는 진실한 모습을 항상 보이시며, "진실하고 허망함이 없으면 모든 고통이 사라진다."고 가르쳤습니다. 따라서 행동이 따르지 않는 말은 공허할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저작권자 © 김해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