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칠산 묘법연화사 법지 합장

 부처님은 보리수 아래에서 과학적인 도구 하나 없이 맨 몸으로 풀방석 위에 앉아 인간의 본질을 탐구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살과 뼈를 포함한 모든 형상과 우리의 모든 감정과 지각들이 합성이 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합성이 된 것이란 여러 개의 성분들이 합쳐져서 생긴 결과입니다.

 예를 들어 못과 나무는 탁자가 되고, 물과 찻잎에서 차가 생겨나고, 공포·헌신·구원자로부터 신(神)이 탄생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그 결과물은 합성을 이룬 각각의 부분들로부터 결코 독립적인 존재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실재로 그것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 가장 큰 미혹임을 깨닫게 됩니다.

 부처님은 이러한 사실이 단지 인간의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물질, 전 세계, 전 우주에 적용됨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이 위대한 깨달음은 '사고의 전환'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다시 말해서 '무엇'이라는 시각에서 '어떻게'라는 방식으로 바꾸어 봄으로써 주위의 모든 것을 해체해버린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무엇'이라는 방식으로 존재를 설명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눈이나 귀, 코, 혀, 몸 등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을 불가에서는 색(色)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것들에 대하여 더럽거나 깨끗하다고 느끼고 살아갑니다.

 그리고는 아름다운 것과 더러운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불교에서는 이렇게 느끼고 느껴지는 것을 수(受)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것이 많다거나 적다고 생각하고, 같거나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불교에선 이런 것들을 상(想)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어떤 일은 옳다고 생각하고 그르다고도 생각하고,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또한 하기 싫다고도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옳은 일과 그른 일, 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은 일로 구분이 되고 이를 우리는 행(行)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이렇게 보이고, 느껴지고, 생각되고, 하고 싶은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인식되는 것이 있다고 말하고 인식하는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불가에서는 식(識)이라고 부릅니다. 모든 것은 이러한 다섯 가지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색(色) · 수(受) · 상(想) · 행(行) · 식(識)을 오온(五蘊)이라고 부르면서 오온을 일체의 법(法)이라고 규정합니다.

 부처님도 오온은 당연히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있다고 한 것은 그냥 "오온이라는 존재가 우리의 인식과는 상관없이 외부에 실재하고 있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정확히 부처님은 "오온은 무상하고, 괴롭고, 변화하는 것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가르칩니다. 이말은 "무상하고, 괴롭고, 변화하는 오온이 외부에 실재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온은 우리에게 무상하고, 괴롭고, 변화하는 모습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 즉 '어떻게'라는 관점으로 설명하신 것입니다.

 실재로 우리는 삶 속에서 눈앞에 드러난 모든 존재를 확인하고 살아가기에 분명 오온을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온과 같은 존재가 우리 외부에 실재하고 있다고 믿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떻게'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러한 믿음이 가장 큰 미혹임을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일시적으로라도 변하지 않고 영원히 외부에 머물러 있는 오온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고의 전환을 통해 깨달음을 증득한 부처님은, 만법이 덧없고 일시적인 것임에도 마치 영원불멸한 존재로 착각하고 욕탐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우리 중생들에게, "세간의 지혜 있는 사람은 변화하지 않고 머물고 있는 오온이 없음을 안다고 하면서, 나도 그런 오온은 없다고 말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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