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9주기 추도식

23일 오후 2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9주기 추도식 행사가 진영 봉하마을에서 열리고 있다.

[현장에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9주기 추도식

 

다시 5월이다. 해마다 5월이면 적잖은 이들이 그를 떠올린다.
김해시민들은 더할 것이다. 벌써 9주기.

23일, 추도식이 열리는 날 봉하로 향한다. 화포천 따라 굽은 길을 달린다.
지난 1년, 그를 떠올릴만한 일들이 많았다. 그때마다 봉하를 찾고 싶었다.
그가 귀향했던 해인 2008년, 그를 만나러 처음 봉하로 향할 때만큼이나 설렌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그가 잠들어있는 이곳은 변함없이 노란빛 물결이 넘실댄다.
길가에 세워져있는 바람개비도, 사람들의 옷과 모자의 색깔도, 저 아이가 들고 있는 풍선 색깔도, 추모객들의 방문을 환영한다는 글귀가 적힌 현수막도. 그를 추모하기 위해 찾은 수많은 인파로 인해 노란 물결은 더욱 크게 일렁인다.

‘추모의 집’에선 ‘한반도 평화의 이정표를 그리다’라는 주제의 기획전시전이 열리고 있다.
김대중 ·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장면들을 모은 사진전이다. 노 전 대통령의 일생도 사진으로 요약돼 있다.
어떤 이는 발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었고 어떤 이는 그를 한참이나 멍하니 바라보다 눈시울을 붉혔다.
“뜻을 같이 했던 친구가 대통령이 돼 남북정상회담을 하는 장면을 지켜봤더라면 그가 얼마나 좋아했을까... 그런 생각이 드니까 저도 모르게 울컥하네요.” 서울에서 새벽기차를 타고 김해로 왔다는 정미현(45) 씨는 결국 손수건을 꺼내든다.

‘담쟁이벽’으로 불리는 추모의 집 외벽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메시지가 빼곡하게 붙어있다. 추모영상관에선 소탈함이 담긴 그의 목소리가 새어나오고 있다.
추모의 집 앞에는 다음 달 선거에 뛰어든 몇몇 후보들이 시민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후보들은 그의 뒤를 이어 정치를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계셨다면 그는 이들에게 뭐라고 할까? 알 길 없지만 퍽이나 궁금해진다.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근처엔 발을 딛기 힘들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추모객들은 조용히 묵념하고 나직히 일행과 대화를 나눈다. 묘역 광장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피아노 연주곡 ‘아름다운 친구(Wonderful Friend)’가 추모 분위기를 더한다.

'평화가 온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는 추도식 무대.

오후 2시, 공식 추도식이 시작됐다. ‘평화가 온다’ 노무현 재단이 정한 이번 추도식의 주제다. 추도식 무대 뒤편 입간판에도 노 전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이 다섯 글자가 새겨져 있다.
무대 맞은편엔 권양숙 여사와 아들 노건호 씨 등 유족을 포함해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정의당 이정미 대표 등 각 정당 대표와 여권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해 앉아있다.
추도식은 국민의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가수 이승철의 추모곡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공연, 추도사, 추모 영상과 유족 인사말, "아침이슬" 추모공연, 참배 등 순서로 진행됐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사람 사는 세상, 살맛나는 세상의 문은 활짝 열렸지만 그 기쁨만큼이나 당신의 빈자리가 아쉽기만 합니다. 굵게 패인 주름 속에 빛나던 넉넉한 미소, 탁주처럼 걸쭉한 당신의 소탈한 목소리가 참으로 그리운 오늘입니다"라고 말했다.
이해찬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중 이곳에 오지 않겠다고 지난해 약속하고 방미 중이다. 그런데 다른 두 분의 대통령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구속 수감 돼 재판을 받고 있는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처지를 빗대 너스레를 떨었다.
차분하게 단상에 오른 노건호 씨는 “지난 1년간 참 많은 일이 있었는데 먼저 머리가 다시 났다”고 농담을 하며 “혹시라도 울적해 하실 분들이 많을 것 같아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올린다. 모두들 용기를 잃지 말아 달라”고 했다. 그가 더욱 아버지를 닮아가는 것 같다.

추도식이 끝나도 사람들은 금방 봉하를 떠나지 않았다. 곳곳에 걸린 그의 사진을 훑어보느라 느릿느릿 걷는 추모객들, 덩달아 그를 떠올리며 발걸음을 늦춘다.
이날 추도식에선 6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함께 그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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