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근 법무사

 

김춘근 법무사

산업혁명과 르네상스 이후 명시적인 신분제도가 소멸된 상태에서 명품은 신분과 능력을 드러내는 새로운 징표였다.

 명품의 유혹은 명품 그 자체의 사용가치보다는 그것이 갖고 있는 후광효과에서비롯된다. 명품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의 질적인 다름과 차이를 끝없이 추구하고 만족하면서 그것이 행복이요 성공이라고 한다. 즉 그 다름과 차이에서 발생하는 심리적 만족감에 탐닉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이 착각이라는 것이다. 자신만의 생각일뿐이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고 간혹 관심과 존경을 보내는 듯이 보여도 그 본질은 시기와 질투 등 평가의 대상으로만 바라볼 뿐이다. 사실 뒤로 돌아서서 비아냥 거리고 나쁜 소문을 퍼뜨리지 않으면 다행이다. 단 사람이 명품이면 강력한 견제구
역할 정도는 될 것이다.  

 리사 자딘은 '상품의 역사'에서 서쪽의 기독교 세계에서 동쪽의 오스만 제국에 이르러 까지 넒은 지역을 아우르며 교역의 양상과 새롭게 싹트기 시작한 다문화주의와 소비주의를 조명하고 있다. 명문가의 귀족들과 새로 부를 쌓은 상인들은 가문의 권력과 지위를 과시하기 위하여 화가들에게 호화로운 그림을 주문했다.

 이국적인 상품의 구매에도 열을 올렸다. 르네상스의 사람들에게 값비싼 보석과 장신구들만 아니라 그림, 태피스트리, 인쇄본, 능라와 다마스크 비단, 청동상 등등 이것들은 인간의 능력과 위엄을 보여주는 물질적 현존이며 수호신이었던 것이다. 국제무역의 상권을 누가 장악할 것인지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동안 국제무역 은 활성화 되고 동서를 잇는 교역로는 확대된다.

 그 교역로를 통해 오고간 무수한 상품들은 풍요로운 물질생활의 향락에 푹 빠져버린 르네상스 사람들의 물질적 욕망을 충족시킨다. 하지만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자꾸만 크지는 그 욕망에 제동을 걸지 못한다. 물질적 욕망은 인간적 위엄에 대한 욕망과 겹쳐진 것이다. 위엄을 갖춘다는 것은 욕심나는 물건의 구매력을 갖춘 사람이 된다는 것과 동일시 되었다.
 
 프란체스코 곤차가 추기경의 소유품 목록은 아름다운 보석에서 필사본까지 휘황찬란 하였다. 그가 죽고 나자 엄청난 빚이 드러났다. 그의 호화스러운 소유물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채권자들의 손에 넘어갔다. 교황 바오로 2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죽은 뒤 남은 엄청난 빚을 상환하기 위해 값진 보석과 예술품들은 모두 팔아야 했다. 보석과 예술품들과 같은 물질들이 뿜어내는 휘황한 빛은 사실 한 순간의 환상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리사 자딘의 문체는 사실의 고증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건조하고 둔 중한 것을 인정한다. 리사 자딘은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의 소비 행태에서 다름 아닌 오늘날의 명품에 열광하는 명품족의 뒷 모습에 감추어진 우울한 그림자를 끄집어내고 있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무자비한 경쟁, 강렬한 소비주의, 탐험과 발견 그리고 혁신이라는 보다 넎은 지평에 대해 끊임없는 욕망을 표출하고 있는 오늘날의 세계 즉, 비열한 민족주의나 종교적 편협함에 크게 신경을 쓰지도 않고 또한 그러한 것들에 대한 숭배도 거부하는 오늘날의 이 세계는 바로 르네상스 시대의 정신이 그대로 배어 잇는 세계인 것이다'라고 

 이런 예시적 지적에 대하여 오늘날을 살아가는 참지식인이라면 명품에 대한 올바른 가치판단과 바람직한 소비에 대한 한층 고양된 철학적 사고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 번 뿐인 소중한 인생을 자유로운 영혼으로 편안하고 안락한 인생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세속의 욕망에 물들어 시류에 영합하는 부평초 같은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저작권자 © 김해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