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자 김해시의원

하성자 김해시의원

우리는 정원이나 화분에서 백합을 즐겨 키우고 꽃을 감상하고 향기를 즐기며 아낀다.
백합꽃 한 다발을 선물로 주고받기도 하며 소위 고상한 것에 백합은 의미로써 이용된다.
같은 백합과지만 양파 꽃은 그렇지 않다. 양파 꽃은 농부에게조차 기분 좋지 않은 꽃이다. 꽃대 때문에 양파로서의 상품 가치가 아예 없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꽃이 피는 양파를 ‘숫양파’라고 불렀다. 양파 밭에서 숫양파는 천덕꾸러기였다. 건너 건너서 꽃을 피우는 숫양파는 성장기라서 모를 때는 똑 같이 대접받다가 꽃 맺음의 조짐이 시작되면서부터 바로 홀대를 받기 시작한다. ‘올해는 숫양파가 얼마 없어야 할 텐데…’ 라는 근심어린 부모님의 말소리와 더불어 하찮은 양파로 전락해버린다. 어머니는 그것부터 뽑아와 반찬으로 이용하였지만 결국 밭 전체의 숫양파를 못 다 먹는 것은 당연했다. 양파를 거둘 때가 되면 알토란 양파는 조심스럽게 다루어지지만 그 양파는 뽑기는 하되 첫 작업에서부터 한 쪽 구석에 던져지는 신세다. 가마니 위에서 적당히 썩거나 건조되거나 우리는 그것들이 다 없어질 때까지 우리 집 반찬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양파 꽃은 씨종자를 목적으로 하는 농부 외에는 전혀 무용지물이 되어서 어린 나는 어머니 심부름으로 양파 꽃이 핀 숫양파를 뽑으러 밭에 갈 때마다 그런 의문 때문에 슬퍼지곤 하였다. 지금 생각해 봐도 백합꽃은 꽃이라고 사랑 받는데 같은 과 식물 양파 꽃은 왜 그래야 하나? 사람도 누구나 고유의 가치를 지녔지만 그 가치를 보지 않고 필요성에 의해 차이를 두고 자기도 모르게 차별도 함을 나도 익히 경험해 온 것이다.

  밤 새 봄비가 내렸던 아침이었다. 나는 양파 꽃이 그렇게 아름다운지를 처음 알았다. 숫양파를 뽑으려고 허리를 숙이는데 보송보송한 꽃술마다 송송 맺힌 물방울들이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게 눈에 들어왔다. 양파 꽃이라 거저 뭉텅이만 보았지 꽃술 하나하나로 이루어졌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경이롭고 눈부셔서 나는 차마 뽑지 못하고 한참을 망설였다. 군데군데 솟대처럼 양파 꽃들은 이웃 밭의 양파 꽃무리들까지 멀리멀리 펼쳐져서 장관을 이루었다. 한 여나믄 개 뽑아오라고 하셨던 것을 하는 수 없이 서너 포기만 뽑았지만 영 켕기지 않는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든 아침이었다. 불쌍하기만 하였다가 양파 꽃이 아름다운 꽃이라는 걸 처음 발견한 그 날이었다. 양파 밭이 꽃밭처럼 느껴졌던 벅찬 아침이었다.

  야생화를 자세히 보면 하나하나가 얼마나 신비로운지 알게 된다. 아직 야생 양파란 소리는 들어보지 못하였지만 쓸모없다고 던져버린 숫양파에서 싹이 돋아 해를 거듭하면서 황폐해진 어느 밭의 둔덕에서 산기슭으로 번져가는 양파 군락을 발견하는 상상을 한다.

  잡초들이 온통 판을 펼치고 있는 밭머리에 선다. 우아한 드레스마냥 새하얀 서리를 차려 입고 도도한 잎 머릴 내밀던 양파의 고고한 초록이 떠올랐다. 그 동안 내 인생에도 된서리 몇 번 내렸었다. 그 때마다 나는 겨울 내내 언 듯 결코 얼지 않았던 꼿꼿한 양파, 그 푸른 잎의 생명력을 생각하며 내 의지를 다시 세우곤 했었다. 이겨낼 수 있는 용기와 마음 비우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힘을 얻으며 무난하게 넘겨온 극복의 시간이었다.
산에서 오는 바람이 문득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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