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칠산 묘법연화사 법지 합장

김해 칠산 묘법연화사 법지 합장

 “전투는 지더라도 전쟁은 이긴다.”
 이 말은 일본 자동차메이커들이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사용하고 있는 과거와 현재의 경영전략입니다.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 미국의 자동차시장은 오랜 동안 축적된 생산기술을 자랑하면서 평균 5000cc 이상의 대형차 시장에 매달렸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를 휩쓴 석유파동과 캘리포니아 주법(州法)으로 발동시킨 스모그 컨트롤 법안은 더 이상 미국 소비자로부터 대형차에 대한 매력을 상실하게 하는 직접적인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생산시설의 변경에 대한 부담과 자동차 생산기술에 대한 오만함으로 미국의 제조사는 대형차 생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효율성(efficiency)에 매달린 결과입니다. 효율성이란 투입 대비 산출의 비율을 말합니다.
 
 1960년대 초, 아담한 디자인을 선보이며 연료 소모가 대단히 경제적인 일본의 소형차가 미국시장에 진입을 하게 됩니다. 당시 중동의 정치상황과 미국의 외교적 이해관계에 의한 마찰 때문에 돈을 주고도 휘발유를 살 수 없었던 미국의 자동차 소비층의 선택은 당연히 소형차로 옮겨가게 되었고 이로 인해 시장이 요동치게 되었지만 여전히 미국의 자동차 산업은 대형차 생산에 고집을 꺾지 않았고 급기야는 미국 자동차 시장을 통째로 일본에 내어 주게 됩니다.  일본 자동차 제조사의 목표 달성은 바로 효과성(efficiency)에 두고 있었습니다. 효과성은 하나의 시스템 혹은 수단이 목표 달성에 기여한 정도를 의미합니다.
 
 효과성과 유효성은 한글과 영어 모두 다른 단어이며 뚜렷이 구분되는 단어이지만 우리는 비슷한 의미로 혼동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둘의 개념은 엄격하게 구분해서 사용해야 하는데 이는 효과성은 결과를 나타내지만 효율성은 과정을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효율성과 효과성을 구분하는 것이 의미 있는 이유는 퇴행적 효율성에 대한 경계 때문입니다. 퇴행적 효율성은 효율성을 달성하기 위해 투입량에 과도하게 인색하고 오로지 산출량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분적인 성공을 위한 전략에는 적합하지만 시스템적인 면에 있어서는 편향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지극히 편협적인 것입니다.

 부처님은 권한과 권력을 모두 다 가진 왕족의 한 사람으로, 그가 원한다면 비교적 어렵지 않게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던, 부처님은 삶에 있어서 그야말로 고민스러웠던 것은 효율성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충족해야 할 '무엇'이라는 대상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우리의 삶을 '어떻게' 살아감으로서 고(苦)의 모든 원인을 제거하는 삶을 살아갈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집(集)은 고(苦)의 원인 또는 인연이 되며, 도(道)는 멸(滅)의 원인 또는 인연이 된다는 진리를 깨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고집멸도(苦集滅道)는 고통의 원인이 집착 또는 갈애이며 고통을 소멸시키는 원인 또는 수단이 도라는 연기관계를 밝힌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추구해야할 목표, 즉 효과성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이처럼 부처님이 깨달은 것은 ‘무엇’을 찾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를 탐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세계와 자아’가 영원하고 항상 하는 존재가 아니고, 인연으로 생기하여 우리에게 무상하고, 괴롭고, 변화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또한 세간이며, 이것을 부처님은 오온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오온이 바로 세간이며 세간법인 것입니다. 모든 존재는 이처럼 인식되고 있으며, 이러한 것들을 부처님은 법(法)이라고 했습니다. 존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존재라고 하면 자칫 '무엇'이라는 착각에 빠질 수 있을 것입니다. 존재란 단어는 산스크리트어로 'bhava'라고 합니다. 엄연하게 존재라는 단어가 있지만 부처님은 법이라는 단어를 선택했습니다. 법이라는 단어는 산스크리트어로 'dharma'라고 합니다.
 
 여기서 존재란 '있다와 없다'로 구분이 되고 법이란 '어떻게'를 뒷받침하는 의미가 됩니다. 다시 말해서 존재란 우리와는 상관없이 외부에 있는 것을 의미 합니다. 그런데 연기법에 의해서 본다면 우리와 상관없이 외부에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따라서 존재라는 말은 대 놓고 사용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때 언어 사용에 능통했던 부처님에게 딸 알맞은 좋은 단어가 법이라는 단어였을 겁니다.

저작권자 © 김해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