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근 법무사

김춘근 법무사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다.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다. 한글 공부를 조금이라도 했다면 행운보다는 행복이 상위 개념이라는 정도는 안다. 인간은 어리석게도 주위에 널려있는 행복을 등한시하고 행운을 찾기 위하여 오늘도 내일도 힘든 인생을 살아간다.

 제록스사의 영업사원인 '로버트 기요사키'가 투자를 하여 많은 돈을 벌었는데 그 경험을 쓴 책이 바로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이다. 아마 1990년대 말경으로 기억한다. 그때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농간과 경제 관료들의 무지, 정권교체기의 혼란기 등과 맞물려 일시적인 금융자산의 유동성 부족 즉 흑자부도였음에도 '국제통화기금사태'라는 초유의 비극을 겪은 때라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 하는 물질만능주의에 정신이 나가 있을 때였다.

 돈만이 지고한 가치이고 인생의 성공과 성패의 척도로까지 생각되어 지던 시기였다. 그러던 시기에 위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의 등장에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고 덕분에 엄청난 판매부수를 기록했다.

 그런데 나는 그 책을 구입하여 읽고 싶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제목만 보아도 그 책 내용이 뻔히 내다보였다. 남들이 다 하는 것을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그 가치와 본질을 논하는 버릇이 있는 탓도 있겠지만 혹여 돈을 버는 방법만을 가르쳐 주고 자랑하기 위한 책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에 체질상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책은 '부자가 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정말 '행복한 사람이 되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는 않았다.

 그 반대의 책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는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 책을 구입하여 읽어 보았다.

 슈마허의 '자발적 가난'이라는 책이었다. 자발적 가난, 이상했다. 가난이면 가난이지 자발적 가난이 무엇이란 말인가! 다소 역발상적인 어법이다. 책을 읽어보니 역시 잘 쓰여 진 책이고 권장할 만한 책이었다.

 가난에 대한, 물질에 대한 철학적 소고였고 인간 삶과 물질에 대한 권련관계를 철학적으로 풀어낸 수준 높은 책이었다.

 '창조적 가난'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 꼭 필요한 '성스러운 가난'이었다. 인위적으로 조작된 미래와 존재에 반하는 투쟁이었고, 야망과 권력에 얽매여 사랑을 잃고 자아를 상실한 채 타인에게 운명을 내맡기는 데 대한 해독제의 처방전 같았다.
 
 가난을 예찬할 수는 없지만 물질적 집착에서 해방된 삶이라는 뜻에서 '역설적으로 가난은 자연의 법을 따르는 삶'이다.

 작은 거처와 소박한 삶은 가난의 물질화된 양태이다. 가난은 '불필요한 필요의 끝없는 확장'을 즉시 멈추는 것이고 그리고 일체의 과잉을 끝없는 추문으로 만드는 고결한 선택의 결과이다.
 
 무소유(필요한 만큼의 소유)를 삶의 이상으로 삼는 사람들, 힌두 고행자들, 불교 승려들, 프란체스코 수도사들은 일회용 소비를 끊고 욕망을 최소화하며 금욕주의의 미학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욕망의 복잡함 속에서 난파당한 사람들에게 그들은 방향을 제시해 주는 새벽별이며 등대와 같은 존재들이다. 그리하여 자아를 욕망의 고삐에서 풀어 자유로운 영혼의 통제 아래 두는 것이다.

 부자가 되기 위하여 노력하는 삶은 아름답다 그러나 부자인 채로 죽어가는 것은 참으로 부끄럽고 못난 사람이다라고. 설사 우리가 욕망하는 그 무엇을 소유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의지 범주를 넘어서는 잉여의 소유는 그것을 통제하기 위해 외부의 힘을 빌려야 하고 쓸데없는 열정을 소비해야 한다. 그것은 더 많은 근심과 불안을 낳는 원천이다.

 말초신경을 만족시키는 탐욕과 필요 이상의 안락함에 대한 갈망을 끊고 꼭 필요한 최소의 것으로, 존재의 단순한 골격만으로 부유함의 모든 욕구를 대체해야 한다. 의도된 가난은 진정한 행복을 위한 하나의 과정, 하나의 기원, 하나의 성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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