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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 조식의 기개 서려 있는 '산해정'민·관 남명 선생 정신가치 계승 노력
산해정 내 서당인 '신산서원'의 전경.

 대동면의 중심에 위치한 대동면주민센터 쪽으로 가다보면, 이정표에 조선시대 석학인 남명 조식(南冥 曺植 - 1501~1572)선생이 후학을 가르치며 지냈던 산해정(山海亭·대동면 주동리 소재)으로 향하는 진입로가 표시돼 있다.


 진입로로 들어서 골짜기로 올라가면 몇 채의 민가가 나오고 그 끝에 산해정이 위치하고 있다.
 남명 조식 선생은 부친상을 마친 30세에 처가가 있는 이곳 김해로 옮겨왔다. 1531년 중종26년 때의 일이다. 그는 장인어른의 도움으로 이곳에 산해정을 짓고 18년간 학문에 힘쓴 것으로 알려져있다.


 산해정 입구에는 늘 푸른 대나무의 절개를 찬미한 남명 선생의 시비가 세워져 있는데 대나무처럼 곧고 꿋꿋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선생의 깊은 마음이 돋보인다.


 산해정의 입구인 진덕문(進德門)에 들어선다. 산해정의 첫 관문인 진덕문은 '덕으로 나아간다'라는 뜻으로 선비의 학문 수양과 교육의 의지가 잘 나타나 있다.


 진덕문을 지나면 신산서원(新山書院)의 편액이 붙어 있는 강당 안에 산해정(山海亭)의 편액이 걸려있다.

신산서원 대청마루에 걸려 있는 산해정(山海亭) 편액.


 산해정은 마치 커다란 새가 날개를 편친 듯이 둘러선 포란형의 지세를 갖추고 있다. 특히 동네 밖에선 서원 안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안에서 밖을 보면 멀리 부산의 시가지까지 살펴볼 수 있어 천혜의 요지라고 해도 손색없다.


 산해정 내부의 넓은 마당과 깔끔한 서원에선 선생의 맑은 풍모와 성망이 고스란히 서려있는 듯하다.


 산해정 처마 아래 걸린 수많은 현판에는 서원을 중건한 선비들의 이름이 촘촘하게 새겨져 있었는데 여기서 학업을 정진했던 선비들은 훗날 서원 철폐령으로 폐지됐던 서원을 스스로의 힘으로 복원하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조식 선생은 성리학 중에서도 실천적 성리학을 강조하며 제자들을 길러 냈다. 선생의 제자 중 의병장으로 이름을 떨친 곽재우, 정인홍, 조종도 등은 의병을 일으켜 스승의 정신을 실천했다.


 선생은 평소에 '경의검(敬義劍)'이라는 칼과 '성성자(惺惺子)'라는 방울을 몸에 지니고 있었는데, 방울을 차고 다니며 주의를 환기시키고 칼끝을 턱 밑에 괴고 흐릿한 정신을 일깨우기 위함이었다고 하니 그의 꼿꼿한 기개를 짐작할 수 있다.


 최근 남명 선생의 기개를 본받고 이를 김해발전의 원동력으로 삼기 위해 민과 관의 이목이 산해정에 집중되고 있다.


 김해시는 조식 선생의 사상 및 실천정신의 확산과 청소년 인성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남명 선비문화 교육관' 건립을 준비하고 있다. 교육관은 이곳 산해정 인근에 걸립된다. 시는 남명 선생이 오랫동안 머물며 경의정신을 실천하고 후학을 양성한 업적을 재조명하는 등 정신적 가치 계승하고 산해정 일대 관광 자원화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또한 남명 선생의 사상과 곧은 기개를 김해시민에게 전파할 목적으로 지난 6월 22일에는 김해남명정신문화연구원(이사장 법륜 스님, 원장 한상규)이 창립되기도 했다.


 남명학 박사 1호인 한상규 김해남명정신문화연구원장은 "자기 성찰과 반성, 그리고 실천이 끊임없이 상호순환 되어야 한다는 남명의 교육사상은 시대의 변천과 격변 속에서도 오늘날까지 계승돼야 할 중요한 정신문화적 유산이다"며 "산해정을 중심으로 김해에 남명 선생의 정신이 찬란하게 꽃 피워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명규 기자  gimhae1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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