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규 논설위원

한상규 논설위원

한 인간이 가지는 인성은 그 특성이 다양하여 일률적으로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므로 어떤 관점과 측면에서 논하느냐에 따라서 출처의 관점은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기에, 공직자의 윤리성을 우선시하여 사적인 위치보다는 더욱 강조되고 있다. 그래서 의회에서는 인사청문회를 통하여 고위공직자의 자질과 능력을 검증하는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공직자의 윤리를 강조한 연암(燕岩) 박지원(朴趾源)은 교육적 인간상을 ‘선비’론에서 밝히면서실학적 관점에서 도덕적 인간으로 정의 내렸다.

 여기서 도덕적 인간이란 인간사회에서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인식하여 삶의 의미를 우주적 공동사회의 일원으로 자신의 임무를 올바로 파악하고 실천하여, 타 존재를 인정하고 도움을 주고 봉사하는 것으로 보람을 찾는 공직자를 의미한다. 연암은 이런 사람을 선비로 규정하고 그 임무를 사람, 사물에 관한 이법을 갖추고 향상시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 이법은 법성현(法聖賢)에 두고서 성현을 본받고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고 보았다. 즉 성현이 남긴 법도를 통해서 내면 정신세계로 들어가 통찰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조선시대 사림 선비는 왕명(王命)보다는 군자(君子)의 도(道)를 실천하여 국정의 올바른 대안을 제시하였다. 유교사회에서 왕명을 거절 할 수 있는 길은 학문적 바탕을 근거로 명분론이 있어야 했다. 이 명분론은 출처와 직접 연결되어 상소문으로 자신의 국정철학을 제안함과 동시에 출처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표하였다. 당시 사림을 대표하는 남명 조식은 다섯 차례 관직을 받고서 거절하는 상소문을 올렸고, 퇴계 이황은 44회 상소문에서 36회가 관직을 거절하는 내용을 올렸는데 처음 관직에 오른 것은 34세 대과에 장원급제하면서 10여년을 관직에 있었다. 이 기간 중 본직과 겸직을 합하여 30여 종류의 관직이 제수되었으나 실제로 직함을 받은 것은 11개뿐이고 나머지는 임명되어도 받지 않았다. 관직은 주로 권력기관과는 거리가 있는 홍문관, 승문원, 춘추관, 경연관 직 이였다. 퇴계는 이처럼 관직 보다는 학문과 후학양성에 뜻을 두고 있었다. 

 무릇 관직에 나아가는 공직자라면 출처에 분명해야한다 남명은 고금의 인물을 논할 때는 반드시 그 출처를 알아 본 이후에 그 행사의 득실을 논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출처의 기준을 보면 △공직자는 도덕성을 품어서 때를 만나지 못하면 고결하게 자신을 수양하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동시에 넉넉히 도를 알고서 물러나 스스로 보존할 줄 알아야 한다 △세상 형세를 헤아려서 그 분수에 맞게 처신하여 가급적 자신을 남에게 내 세우지 않는데 편안함을 두어야 한다. 혹 관직에 나가더라도 청렴결백하여 스스로 지킬 것을 지키고 천하의 일에 바삐 서두르지 않고 그 몸을 조촐하게 보존하여야 한다 △선비의 길은 고인의 길이며 군자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고인의 길은 옳고 그른것, 바르고 사특한 것을 판별할 줄 아는 의(義)에 두는 정신적 자세가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선비는 건전한 사고, 건전한 비판,  치자(治者)에는 도의 원리를, 백성에게는 정당성을 주장하는 개혁론을 제시하여 공론화 하여야 한다.

 오늘에 이르러 모든 정부 부처의 공직자가 출처가 불분명하고 권세와 허명과 이득을 쫒아 국정을 문란하고 있어  옛 선비의 출처가 그리워진다. 얼마 전 총선에서 자격 미달자들이 저마다 국회의원이 되려고 기를 쓰고 매달리는 세태를 보고 국민은 실망하였다. 선량(選良)을 뽑는 선거는 이미 옛 말이 되어 버렸으니 한탄스럽다. 국가관의 정체성도 변질되고 국민을 기만하고 우롱하는 입후보자들이 만연하니 어찌 제 정신 갖고 투표장으로 가겠는가. 고위 공직에 줄을 대어 장.차관을 지낸 인사가 위법을 저질러 법정 구속을 받는 세태를 누가 책임지겠는가. 민주주의 국가는 선거로 말하고 언론으로 정당한 여론을 일깨워 준다. 공직자는 물론 국민 모두가 출처에 대한 공부를 해야만 올바른 정의사회가 이루어진다. 사회가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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