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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계속>>>경이라는 것은 두려워한다는 것과 근사한 것으로, 항상 엄숙하고 두려워하여 감히 스스로 방일하지 않으면 이 마음이 늘 보전되어 학문이 진취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학문은 가장 두려운 것인데, 잠시라도 쉬게 되면 성취하지 못하는 것이므로 옛사람도 이를 근심하였습니다." 임금이 말했다. "학문하는 방도는 방일한 마음을 거둬들이는 데에 있고, 방일한 마음을 거두어 들이는 것은 반드시 경으로 해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요약된 것이다." 이같은 김우옹은 남명에게서 배운 '경'을 선조에게 거침없이 말하였다. &
김해 남명 선비정신 문화를 찾아서
김해일보
2020.04.09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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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의 교육은 서양의 교육론과 다소 차이가 있다. 가르치면서 행하고, 행하면서 배운다는 취지에서 볼 때 자신을 수양하는 수기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명의 교학내용은 《학기》 에 가장 많이 실려 있다. 이 책은 남명이 성리학을 탐구하면서 함양한 공부의 주요 학습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남명은 일찍부터 나라의 안위를 염려하면서도, 산사에서 독서를 통해 선인들의 언행을 고찰하였다. 따라서 《학기》 는 선현의 사상을 스스로 깨달아 얻은 바를 자신의 사상으로 체득한 학문적 의지의 소산이라 하겠다. 《학기》에서 주로 논구한 교학사상은
김해 남명 선비정신 문화를 찾아서
김해일보
2020.04.09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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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계속>>>퇴계가 남명에게 ‘애가 그와 더불어 신교를 나눠온 자 오래이다’ 또는 ‘평소 흠모하기를 깊이 한 바다’라고 하거나 ‘오늘날 남방의 높은 선비로는 오직 이 한 사람을 꼽는다’ 라고 하였다. 남명 역시 퇴계에게 편지하여 ‘평소 존경해 온 마음이 하늘에 있는 북두칠서만큼 크다’ 라고 하였다. 이것은 남명과 퇴계가 진심으로 서로 흠모하였던 것을 보이기 위함이었다. 남명과 퇴계는 이처럼 ‘백년의 신령스런 사귐’ 혹은 ‘천리의 신령스런 사귐은 고인도 숭상하던 바’ 라고 하면서 서로 공경하였다. 남명이 71세 되던 해 퇴계의 부
김해 남명 선비정신 문화를 찾아서
김해일보
2020.03.0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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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계속>>>정주학에 대해서는 더 이상 논할 것이 없다고 하면서 이제 실천하는 문제만 남아 있을 뿐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남명과 퇴계를 대비시키면서 그 특장을 논의하는 것은 일찍부터 있어왔던 일이다. 그러나 인조반정 이후 내암 정인홍이 실각하고 이와 함께 남명학파가 추락하면서 남명과 퇴계에 대한 평가가 그 균형을 잃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광해군일기》등에 보이는 기록들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의하면 퇴계가 남명과 더불어 한 시대에 예안의 도산에서 강학과 도를 논하여 학문을 크게 천명하고 도와 덕을 이루었으니 실로 우리 동방의 주자
김해 남명 선비정신 문화를 찾아서
김해일보
2020.03.02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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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계속>>> (가) 요사이 남명으로부터 온 이의 말에 의하면, 호남 기사문(기대승을 말함)이 일찍이 황과 더불어 사단칠정을 논한 서찰을 주고받은 것이 남명의 극히 옳지 않다고 하며, 심지어 기세도명이라고 지목했습니다. 이 말은 참으로 약석이며, 이 이름은 매우 두려운 것입니다. (나) 마침 남명은 조건중의 편지를 받았는데. 이르기를 “요즘 공부하는 사람들을 보건대, 손으로 물 뿌리고 비질하는 정차조차 모르면서 입으로는 천리를 이야기하여 헛된 이름이나 훔쳐서 남들을 속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리어 남에게서 상처를 입게 될
김해 남명 선비정신 문화를 찾아서
김해일보
2020.02.24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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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계속>>> 이것은 퇴게와 남명이 학문적 견해와 개인의 성향에 있어 다소 구별된다는 것을 말하며, 두 분에게 있어 상호 배타적 거리가 설정되어 있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같은 사정 속에서 남명은 퇴계에게 공허할 수도 있는 성리논쟁보다 현실에 적용이 가능한 실천적 학문을 젊은 제자들에게 권유하도록 요청하였다.요즘 공부하는 사람들을 보건대, 손으로 뿌리고 비질하는 절차조차 모르면서 입으로는 천리를 이야기하여 헛된 이름이나 훔쳐서 남들을 속이여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리어 남에게서 상처를 입게 될 뿐만 아니라 그 피해가 다른 사람
김해 남명 선비정신 문화를 찾아서
김해일보
2020.02.17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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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계속>>> 그가 죽자 남명이 찾아와 곡을 하고, 묘자리를 정할 때 남명이 직접 그 자리를 점지해 주었다고 한다. 남명의 문인인 김우옹은 24세 때 남명의 문하에 나아갔다. 이 때 남명은 김우옹을 무척 총애하여 항상 차고 다니던 쇠방울 성성자를 주고 뇌천이란 글자를 써 주면서 대장부의 의리를 취하도록 하였다. 훗날 자신의 외손녀와 혼인시키기도 했다. 김우옹의 형 김우굉도 남명의 문하에 출입하였다. 또한 퇴계 문하에도 출입하였다. 한 번은 퇴계가 남명의 학문 성향을 논하면서, ‘조남명은 노자, 장자의 기미가 있다’라고 한 적이
김해 남명 선비정신 문화를 찾아서
김해일보
2020.02.10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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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계속>>> 남명이 임금의 부름을 받고, 군자가 때에 맞게 나아가고 물러나는 마땅한 도리에 의거하여 처신하는 것을 보면서 서로의 입장과 처세를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군자의 길이란 공자나 주자와 같은 고인의 길이고, 고인의 길은 바로 선비의 길이며, 선비의 길은 옳고 그름을 분명히 가리면서 사리에 맞다고 생각하면 그 도리를 실천하는데 있다. 《논어》 편에 ‘고인의 뜻을 전하기는 하되 자신이 새로 창작하지는 않는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옛 사람들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따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군자는 항상 배우고 생각
김해 남명 선비정신 문화를 찾아서
김해일보
2020.02.03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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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계속>>>결국, 남명의 정신과 성격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친 4가지 요소 가운데 3가지 요소가 가야정신과 밀접하게 연관됨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남명의 정신 속에 깃든 의기와 무도, 그리고 검과 의를 숭상하는 화랑도 정신이란 실은 가야정신임을 알 수 있다. 비록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이러한 무도 중심의 화랑도 정신은 크게 변질되고 말았지만, 가야문화권의 모태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남명은 가야의 독특한 정신과 기질적 영향을 받아서 이것을 그의 의 중심의 경의 사상이라고 하는 독창적인 사상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본다.3.남
김해 남명 선비정신 문화를 찾아서
김해일보
2020.01.2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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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남명의 정신과 성격의 형성에 가야적인 특성이 반영되고 있다고 주장 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일반적으로 한 인간의 정신과 성격의 형성은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다고 본다. 즉, 정신과 성격의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는 크게 생득적인 요인과 후득적인 요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생득적인 요인으로는 유전적(가문적)인 요소와 지리환경적인 요소가 있다. 후득적인 요인으로는 성장과정에서 주로 보고 듣고 익힌 것이 무엇있느냐가 중요한데, 여기에는 생득적인 것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요소 외에도 시대적인 상황과 연
김해 남명 선비정신 문화를 찾아서
김해일보
2020.01.1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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